인물1_김민서
여산초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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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17 13:42
남자현은 1919년 만주로 망명하여 서로군정서에서 활약하는 한편, 독립운동을 전개하는 각 단체와 군사기관, 농어촌을 순회하면서 독립정신을 고취하였다. 동만주 12곳에 교회와 예배당을 세워 전도하였으며, 10여 곳에 여자교육회를 설립해 여성을 계몽하는 데도 힘썼다.
또한, 남만주 각지를 순회하면서 동포간의 단합과 군자금 모집을 위하여 활약하였다. 1924년 채찬·이청산 등과 총독 사이토를 암살할 것을 계획하였으나
미수에 그치고 다시 만주로 돌아갔다.
1932년 국제연맹 리튼조사단이 하얼빈에 오자, 흰 수건에 ‘한국독립원’이라는 혈서를 써서 조사단에 보내 우리의 독립을 호소하였다.
1933년 이규동 등과 주만일본대사 무토 노부요시를 죽이기로 하고, 동지와의 연락 및 무기운반 등의 임무를 띠고 걸인노파 차림으로 하얼빈 교외 정양가를 지나다 일본 경찰에 붙잡혔다.
6개월 동안 갖은 혹형을 받다가 단식투쟁을 전개하고 보석으로 석방되었으나, “독립은 정신으로 이루어지느니라.”라는 말을 남기고 하얼빈에서 세상을 떠났다.
또한, 남만주 각지를 순회하면서 동포간의 단합과 군자금 모집을 위하여 활약하였다. 1924년 채찬·이청산 등과 총독 사이토를 암살할 것을 계획하였으나
미수에 그치고 다시 만주로 돌아갔다.
1932년 국제연맹 리튼조사단이 하얼빈에 오자, 흰 수건에 ‘한국독립원’이라는 혈서를 써서 조사단에 보내 우리의 독립을 호소하였다.
1933년 이규동 등과 주만일본대사 무토 노부요시를 죽이기로 하고, 동지와의 연락 및 무기운반 등의 임무를 띠고 걸인노파 차림으로 하얼빈 교외 정양가를 지나다 일본 경찰에 붙잡혔다.
6개월 동안 갖은 혹형을 받다가 단식투쟁을 전개하고 보석으로 석방되었으나, “독립은 정신으로 이루어지느니라.”라는 말을 남기고 하얼빈에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