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산동헌김지후

여산동헌김지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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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산 성지는 1868년 무진박해 당시 고산, 금산, 진산 등의 심산유곡에 숨어 살다 이곳 여산 관아로 잡혀 온 천주교 신자들이 모진 형벌과 굶주림의 고통을 당한 순교지입니다. 1866년 병인박해는 신앙 공동체를 형성하고 평화롭게 살았던 교우들을 혹독한 박해의 칼날 아래로 내몰았고, 비록 조그마한 고을이었지만 여산에는 사법권을 지닌 부사와 영장이 있었기 때문에 교우들을 마구잡이로 처형시킬 수 있었습니다.

“치명일기” 등에 기록된 순교자만도 25명에 이르는 여산은 특히 다른 어느 지역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었던 가혹한 처형 방법으로 유명합니다. 여산 동헌에 잡혀 온 신자들은 참수, 교수는 물론 백지사형(白紙死刑)으로도 죽임을 당했습니다. 백지사형이란 교우들의 손을 뒤로 결박하고 상투를 풀어서 결박된 손에 묶어 얼굴을 하늘로 향하게 한 다음 얼굴에 물을 뿜고 그 위에 백지를 여러 겹 붙여 질식사시키는 처형 방법이었다.

조선 말기의 건조물로 추정되는 여산 동헌은 1980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93호로 지정되었고, 맞은편 여산 초등학교 내에 있던 감옥은 흔적도 없습니다. 여산 동헌과 여산 숲정이 사이에 위치한 여산 성당은 동헌 바로 아래 부지를 매입하여 백지사터 성지를 조성했습니다. 백지사터 성지에는 순교성지 기념비와 십자가의 길, 백지사형 당하는 얼굴 조각 등이 있어 박해 당시의 처절함을 느끼며 기도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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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 2018.05.09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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